"세살 때 심장병으로 떠난 여동생… 그 기억이 나눔으로 이끌어" -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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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범준 기자
[감동시리즈-우리함께] <17>노래로 나눔 실천하는 '수와진'

명동 무대서 심장병 어린이 본후 어려운 사람 위해 살기로 결심 이듬해 데뷔해 큰 인기 얻었지만 동생 안상진씨 사고로 긴 공백
 "다시 무대 이끈 것도 결국 사람"
명동을 넘어 전국으로 고속도로 휴게소 돌며 노래하다 재능기부하겠다는 사람들 만나 그 계기로 사단법인 만들어 크리스마스 봉사
벌써 9년째 "여러분도 산타가 될수 있어요"
 
"제 나이 열여섯살 때 여동생이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세 살이었죠. 집이 가난해서 포대기로 동생을 말아서 새벽에 집 근처 산에 직접 묻어줬어요. 그때의 기억이 일생을 좌우한 것 같아요." 1980년대 최고의 남성 듀오 '수와진'. 안상수, 안상진 쌍둥이 형제로 이뤄진 남성 듀엣 수와진은 가수 활동을 했던 1980~90년대부터 어려운 이들을 위한 자선공연을 펼쳐 선행을 하는 팀으로도 유명했다. 이들은 사단법인 '수와진의 사랑더하기'라는 단체를 설립해 더 큰 나눔을 실천해오고 있다. 오는 성탄절에도 사랑나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이사장 안상수씨(56)를 만나 자선사업에 뛰어들게 된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제 나이 열여섯살 때 여동생이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세 살이었죠. 집이 가난해서 포대기로 동생을 말아서 새벽에 집 근처 산에 직접 묻어줬어요. 그때의 기억이 일생을 좌우한 것 같아요." 1980년대 최고의 남성 듀오 '수와진'. 안상수, 안상진 쌍둥이 형제로 이뤄진 남성 듀엣 수와진은 가수 활동을 했던 1980~90년대부터 어려운 이들을 위한 자선공연을 펼쳐 선행을 하는 팀으로도 유명했다. 이들은 사단법인 '수와진의 사랑더하기'라는 단체를 설립해 더 큰 나눔을 실천해오고 있다. 오는 성탄절에도 사랑나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이사장 안상수씨(56)를 만나 자선사업에 뛰어들게 된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수와진'으로 활동하며 자선공연

시작은 미약했다. 거리 공연을 하던 이들은 1986년 명동성당에서 심장병 어린이와 불우이웃을 돕는 자선공연을 하면서 유명해졌다. "아베마리아를 불렀던 김승덕 선배가 너희 쌍둥이가 하면 특별하겠다고 해서 처음 공연을 하게 됐는데 공연장에 와 있는 심장병에 걸린 아이들을 보니 죽은 동생 생각이 자꾸 나더라고요, 그래서 가수로 정식 데뷔한 후에도 계속 자선 공연을 하게 됐어요."

부산 초량에서 보낸 학창 시절, 어렸을 때는 단지 잘사는 게 꿈이었다. 동생과 함께 잘살고 싶었고, 자신의 대에서 가난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돈을 벌기 위해 가수 생활을 시작했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런데 어린 시절 마음에 묻었던 여동생에 대한 기억이 결국 두 형제를 남을 위해 사는 삶으로 이끌었다. 명동성당에서 한 그 자선 공연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은 여동생에 대한 기억이 오버랩됐기 때문이었다.

"명동 공연에 온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무엇을 갖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곰인형이라고 하더라고요. 언제나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는 곰인형을 심장병 어린이들이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걸 사주기 위해 공연을 하고 또 했어요."

선한 마음이 더해졌기 때문이었을까. 1년 뒤인 1987년 수와진은 '새벽 아침'으로 데뷔해 그해 KBS 가요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돌풍을 일으키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시련이 닥쳤다. 동생 안상진씨가 1989년 괴한들에게 피습을 당해 전신을 구타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동생 안씨는 이 일로 뇌를 크게 다쳐 전두엽의 기능 70%가 소실됐다. 세 번의 뇌수술을 한 후에 의식을 회복했지만 이후에도 간경변, 폐종양 등 질병에 시달리며 심신이 미약해졌다. 현재는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해 형과 함께 활동 중이지만 여전히 건강을 챙겨야 하는 처지다.

"동생은 많이 치유됐지만 여전히 건강에 계속 신경을 써야 해요. 특히 추운 날씨엔 더더욱. 정말 그때는 저도 사람이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우리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선한 일을 하려고 애써왔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세상이 원망스럽고 삶의 회의가 찾아오기도 했어요. 그래서 5년 동안 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었죠."

당시엔 이미 가수로서 인기를 많이 얻어 먹고사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 그저 속세를 떠나도 괜찮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를 다시 노래하고 자선 활동을 펼치게 이끈 것은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그간 여기저기서 공연을 많이 하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리고 저희가 자선활동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도움을 요청하시는 분도 많았고요. 그분들의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어요. 심장병 환자를 비롯해 불우이웃들을 돕겠다던 약속들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돌아오게 됐어요."
 
■노래보다 더 아름다운 나눔

5년의 공백기를 지나 돌아온 명동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고 그는 회상했다. 거리 공연을 하는 곳이 꼭 명동이어야만 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수와진은 명동을 떠나 자신들을 원하는 지역을 찾아다니며 공연 활동을 펼쳤다. 전국을 다니며 자연스럽게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됐다.

어느 날 지역을 다니며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도로공사와 구세군이 찾아왔다. 함께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캄보디아와 동남아 지역의 심장병 어린이 돕기 행사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전국에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다니며 2년간 공연하다보니 나눔에 관심을 가진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됐다고 안씨는 말했다.

"그 공연을 계기로 사단법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누구를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 마음이 있는 분들과 함께 재능기부를 통한 거리모금 활동과 후원금 및 수익금 기부를 하는 재단을 만들게 됐어요. 저희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통로 역할을 하는 거죠. 최근에는 친한 설운도 형님도 '이제 나도 좋은 일을 할 때가 됐다'며 힘을 보태겠다고 했어요. 내년부터 함께 활동하게 될 겁니다."

뜻을 같이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다보니 이제는 자선공연 외에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쌀 기부행사나 성탄절 사랑나눔 행사 등 다양한 일을 펼쳐나갈 수 있게 됐다.

특히 지난 2010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하는 '사랑더하기 행복한 산타클로스'는 첫해 300여 가정을 돕는 것을 시작으로 올해 4000여 가정을 후원하는 '수와진 사랑더하기'의 가장 큰 프로젝트가 됐다.

안씨는 "성탄절이 종교적 의미도 있겠지만 하루만이라도 어려운 가정에 행복한 웃음꽃이 피는 날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여전히 있다"며 "한 가정당 25만원 상당의 후원을 하는데 아직 재정을 모두 확보하지 못해 요즘 사업계획서가 담긴 서류가방을 들고 영업사원처럼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어떻게 사느냐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아마 남을 도와줘본 분들은 삶의 기쁨과 목적이 하나둘 커지는 것을 느껴 이를 중단하기 어렵다는 걸 잘 알 것"이라며 "이런 기쁨에 함께 동참을 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이 프로젝트가 계속되고 10년 뒤에는 20만명의 산타가 50만 가정을 도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jhpark@fnnews.c o 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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